'남산예술센터'에 해당되는 글 8건

  1. 2019.07.17 [관극단상] 명왕성에서 - 2019. 5. 26. 남산예술센터
  2. 2018.03.17 [관극단상] 본 공연은 자막이 제공됩니다. - 2018.3.15, 남산예술센터
  3. 2017.11.19 [관극기] 파란나라 - 2017.11.4 (3회), 남산예술센터 1
  4. 2017.10.23 [관극기] Ten Years, Please 십년만 부탁합니다 - 2017. 10. 18 (1회), 남산예술센터
  5. 2017.09.18 [관극기] 에어콘 없는 방 - 2017. 9. 14 (1회), 남산예술센터
  6. 2017.06.13 [관극기] 국부(國父) - 2017. 6. 11 (2회), 남산예술센터
  7. 2017.04.25 [관극기] 가해자 탐구_부록 : 사과문작성가이드 - 2017. 4. 21 (1회), 남산예술센터
  8. 2017.04.07 [관극기] 2017 이반검열 - 2017. 4. 6 (1회), 남산예술센터

[관극단상] 명왕성에서 - 2019. 5. 26. 남산예술센터

소통/영화,연극,공연 이야기 2019. 7. 17. 17:30



"안녕, 지구에 계신 여러분. 엄마 아빠 언니 동생 그리고 친구들 안녕.
우리 지금 명왕성에 와있어요. 저 멀리 끝도 없는 끝 우주로 떠나는 도중에 잠시 여기 내려왔답니다.

다른 기억은 놔두고 저만 잊으시면 안될까요?

니가 보았던 내 눈은 이제 없어. 거기 없어. 어디에도 없어. 니 마음 속에도 없어. 없는거야.
우리 몸이 흩어졌듯이 우리 마음도 흩어진거야.

저 이제 자유에요. 어디든지 갈 수 있어요.
그러니까 저를 위해 여행하지 마시고, 가족끼리 즐겁게 여행하세요.

저희는 별에 있다고 했잖아요.
저희가 없어도 지구는 충분히 아름다워요." - <명왕성에서> 대사 중에서


.....


극단 코끼리만보는 개인적으로 애정하는 창작단체이기도 하거니와 특히 세월호참사와 관련한 많은 조사와 준비, 훌륭한 출연진과 제작진이 만들었다는 점에서 많은 기대를 가지고 보았던 작품이다.

그러나, 공연을 보고 나서는 길 답답하고 개운치 않은 감정들이 뒤섞여 창작 하는 자로서 나 스스로에게 결코 가벼울 수 없는 수 많은 고민과 질문을 던지게 했다.


.....


굳이 아이들을 소환해 명왕성으로 보내면서까지 누구 마음 편하자고 이런 대사들을 무대에 올려야 했을까?

실존하는 사실과 인물들, 아직 진상조사조차 제대로 시작 못한 세월호참사, 그 희생자들과 유가족. 그들을 연극안으로 불러들이고, 감각하는 것은 누구를 위한 것이어야 하는가?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과 의도가 지극히 연극하는 창작자 개인의 것이어도 되는가?

단순히 극적서사를 위해 감정을 자극하는 이야기나 장면들을 자의적으로 배치하고 구성하는 것이 온당한가?

동시대를 깊이 통찰하는 문제의식과 참사를 야기한 사회구조적 문제에서 우리 역시 결코 자유롭지 못한 방조자이자 가해자임을 직시하게 될, 뼈를 깎는 철저한 자기반성 없이 그저 남은 자의 슬픔을 누그러뜨릴 이른바 치유의 진혼극을 올리는 것이 과연 합당한가?


.....


나는 기억한다.

나 역시 방관자, 방조자, 가해자임을

나는 기억한다.

더 이상 누구에게도 되풀이되지 않도록

나는 기억한다.


2019. 7. 17



...더보기


<명왕성에서>
남산예술센터
2019.5.15~2019.5.26
주최·주관: (재)서울문화재단, 극단 코끼리만보 
제작: 남산예술센터, 극단 코끼리만보 

작/연출 박상현

출연진
강봉성, 강연주, 김동휘, 김문식, 김솔, 김은정, 김청순, 백익남, 윤미경, 
윤현길, 이동영, 이상홍, 이우현, 이은정, 이지원, 최지연, 최지현, 최지
현, 최희진

제작진
드라마터그 손원정
제작PD 권연순
무대 손호성
조명 남경식
음악 이율구
영상 윤민철
의상 고혜영
분장 이동민
액팅코치 강민재
움직임 홍예원
조연출 김예진, 이철용
무대진행 문성복
홍보사진 이강물
인쇄물디자인 브랜드디렉터스
배리어프리버전 제작 (주)사운드플렉스스튜디오

:

[관극단상] 본 공연은 자막이 제공됩니다. - 2018.3.15, 남산예술센터

소통/영화,연극,공연 이야기 2018. 3. 17. 04:27




자막지나, 발표영균, 확성목소. 세 인물이 펼쳐내는 인터랙티브 렉쳐 씨어터.


텍스트 검은 글씨, 소리상자 울려나는 음성, 그리고 몸을 띤 인물. 무대 위에 서로 다른 물성으로 실존하는 상이한 세 존재. 끊임없이 사유하고, 질문하고, 시도하고, 소통하며 현존한다.


뒷벽 스크린에 뿌려진 인터뷰이의 일렁이는 영상과 파도소리인듯 철썩이며 일그러지는 음성이 아련한 기억속 바스라지는 거품처럼 만져질듯 스러져 풍경이 된다.


공연예술이 어떻게 존재하고 표현될 것인가에 대해 무대 위에 펼쳐놓은 치열한 고민들과 실험은, 오히려 모든 존재 하는 것 그 자체에 대한 근원적 질문과 성찰을 쌓아올림과 동시에 허물어뜨린다.


만나지고 헤어지는

순간과 공간들이

부딪고 맴돌며

존재하고 흐른다


나고 죽는 생처럼

아무런 이유도 없이


2018. 3. 15




<본 공연은 자막이 제공됩니다.>

2018. 3. 15 / 남산예술센터


참여작가 : WHATSUB(김지나, 허영균, 목소)

영상촬영/편집 : 고상석

기획/기록 : 정산희

조연출 : 정찬영

인터뷰이 : 김재엽, 우정원, 최귀웅, 이리, 정태환, 고주영, 전강희, 옥영현, 하지훈


※ 서치라이트(SEARCH WRIGHT) 총 8편 중 3번째 작품
   2018. 3. 13 - 3. 23


:

[관극기] 파란나라 - 2017.11.4 (3회), 남산예술센터

소통/영화,연극,공연 이야기 2017. 11. 19. 02:05




어느새 무대 중앙에 걸린 태극기 푸르게 물들자 공연은 끝났다. 따갑던 박수소리도 잦아들 무렵, 가득 채웠던 객석 삼삼오오 일어서던 관객들
사이, 단체 관람이라도 온 것일까 얼핏보기에도 앳되 보이는 나어린 관객들. 함께 온 친구들끼리 주고 받는 말들이 귀에 듣긴다.


"끝에 그게 뭐지?"
"열나 재밌는데.. 어렵다."

..

공연은 벌써 종연 막이 내렸건만, 열대엿새가 지나도록 아무것도 쓰지 못했다.

내 안에서 또렷이 떠오른 심상과 의식만큼, 막막하고 답답한 마음 저편. 내게 던져진 날카로운 현실문제의 깊은 파고. 들어지는 생각과 감각되는 인식만큼 차마 꺼내어지지 못하는, 답을 찾지 못한 질문에 입은 절로 무겁다.

묻고 싶은 것들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쌓여질 수록 내 안에 맺힌 인식과 심상의 실체, 그것을 정의할 적확한 단어와 표현을 찾아 헤매느라 말 한 마디 글 한 줄 외려 내어지질 않는다.

찾으려 다가가려 애쓸 수록 하려던 말은 현실에 단단히 발 딛지 못하고 관념에 붙들려 공허하고 공허하다.

..

꿈과 사랑이 가득한 천사들이 사는 나라
맑은 강물이 흐르는 울타리가 없는 나라

언제나 있지만 어디에도 없는 나라
누구나 가보고 싶어 생각만 하는 나라

우리가 한 번 해봐요 온 세상 모두 손 잡고
새파란 마음 한 마음 새파란 나라 지어요

새파란 마음 한마음
온 세상 모두가 손잡아 새파란 나라

..

정말 그래도 되는 것일까?
모두가 새파란, 모두가 오직 한 마음.

정말 그래도 되는 것일까?
빨강, 보라, 노랑, 초록, 주황, 감람, 다홍, 분홍, 연두 하나 없이.. 그저 파랗기만 한 나라.

과연 그래도 되는 것일까?

..


다수결에 의한 간접정치, 대의 민주주의는 어떻게 전체주의 파쇼로 변질되는가?
일인 독재와 일당에 의한 전체주의의 차이는 무엇인가?
다수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소수의 권리와 목소리는 무시되거나 묵살되어야 하는가?
다수가 지향하는 단일한 이념이란 이유로 구성원 모두에게 강요하거나, 다른 이를 소외하고, 무시할 당연한 준거로 작동되어져도 괜찮은가?

권력(집단)에 의해 땅과 바다, 하늘 위에 선을 긋고 안과 밖을 나누어, 이름과 깃발, 노래와 선언문 따위의 상징을 통해 존재하지 않던 허상을 실재하는 것이라 믿게한다. 또한 전체의 의견을 수렴하여 합의된 것 처럼 보이지만 실은 소수 권력에 의해 제정된 법과 규칙, 규율을 내세워 선 안의 모든 것은 반드시 신고하고, 등록하고, 허가받게 함으로써 전체를 통제하는 강력한 수단으로 사용한다.

다름아닌 국가 생성과 작동의 원리.

전체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전체는 전체를 구성하는 구성원을 위해 존재하는가 아니면, 개개의 구성원이 전체를 위해 존재하는가?

국민이 위임한 주권은 누구에 의해 유용되는가?
전체의 부를 독식한 절대소수 자본권력에 의해 공익과 공리라는 이름으로 둔갑한 신자유주의 자본논리를 맹목적으로 좇고 신봉하도록 설계된 사회. 정작 개개인의 생활과, 권리, 복지, 사회적 안전망이 보장되지 않는 나라. 민주주의란 이름으로 행해지는 파쑈.


..

시민의 힘으로 정권은 교체되었으나, 아직 켜켜이 쌓인 부패와 숨겨진 진상을 밝혀 청산하고 단죄하기에는 갈 길이 멀다. 그럼에도 늘 깨어 스스로에게 전체라는 이름으로 맹종과 맹신, 편협한 우상에 갇혀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무시하고 억압하는 것은 아닌지 매 순간 살피고 경계 할 일이다.



2017. 11. 19
夢靑閑



2017. 11. 4. 남산예술센터 - <파란나라>



<파란나라>
극단 신세계 / 2017.11.2-11.12, 남산예술센터

작/연출 : 김수정
출연 : 강지연, 권미나, 권주영, 김두진, 김보영, 김선기, 김정화, 김형준, 문지홍, 박미르, 박세인, 박형범, 양정윤, 이강호, 이은정, 이종민, 이창현, 하재성, 홍승안

드라마터그 : 김연재
무대디자인 : 이상호
조명디자인 : 윤해인
의상디자인 : 김미나
음악감독 : 이율구
음향감독 : 전민배 / 음향조감독 : 이문규
무대제작 : 풀굿
음향오퍼레이터 : 김덕주
조명오퍼레이터 : 김상훈
조명크루 : 김진우, 김태진, 손태규, 오예슬, 이미연, 정태진, 조예지, 최재길
무대감독 : 최민경
무대기기 전환수 : 조철휘
극단기획 : 이찬비
조연출 : 강형준, 민현기, 최민경
영상 : 박영민
사진 : 박일호
인쇄물디자인 : (주)디자인컴퍼니
자문 : 김명화, 이경미
도움 : 이순임, 이주은
협찬 : 율곡 고등학교


:

[관극기] Ten Years, Please 십년만 부탁합니다 - 2017. 10. 18 (1회), 남산예술센터

소통/영화,연극,공연 이야기 2017. 10. 23. 11:07




"나를 보러오라고 한거 미안해요."

맨 뒷줄 서너명의 느닷없는 박수. 사람들 따라 치지 않는다. 끝인 줄도 모르게 끝난 공연, 객석 조명 밝아지자 그제야 사람들 손 털듯 박수치며 일어서 나간다. 한 시간 런닝타임은 대여섯 시간 같은 피로감을 남겼다. 공연 전체가 작가 개인의 지극히 개인적이고도 비밀스런 악몽. 꼼짝없이 감금되었다가 풀려난 나. 어느 인터뷰 영상 위탁 보관인의 말 '와, 드디어 해방이다!' 따라하듯 내뱉는다.

"저건 정말 잉여거든. 원래 저는 기능이 없으면 다 버려요." - 위탁보관인 인터뷰 영상 중에서

어쩌면 이 극에서 작가는 존재의미에 대한 담론을 발화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분신이자 자신의 작품, 존재하는 것에 대해 효용과 가치를 따지고 평가하는 타인의 시선 앞에 작가는 '존재하는 것은 그저 존재할 뿐'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 극은 '그저 존재하는 존재'들을 가만 보아넘기지 않는다. 존재하는 무언가에 의미를 부여하고, 자기방식으로 변형하고, 다른 존재로 조형하며, 심지어 실재하는 무존재, 비어있는 여백, 공간과 순간들까지도 내버려두지 않고 무언가로 끊임없이 채워넣는다.

공처럼 뭉쳐진 소형 작품에서 무대장치급의 대형 작품까지 수십여개의 오브제에 여러대의 프로젝트 매핑, 애니메이션 영상과 비디오 클립, 텍스트와 녹음된 나래이션, 복잡다단한 조명과 효과, 스피커장치에서 쉴 새 없이 흘러나오는 수십여가지 다양한 음향들로도 모자라 일곱명의 검은 퍼포머를 등장시켜 이리저리 오브제를 밀고 끌고 당기고 돌리고 오르고 뛰어 넘는다.

시작부터 끝까지 공연내내 쉴 새없이 나열되고, 진열된 너무나 많은 공감각 정보들은 극을 통해 하려던 이야기를 모호하게 만들고, 관객에게도 스스로 상상하고, 생각하고, 이입하고, 공명할 순간을 앗아버린 채 혼란과 혼돈의 소용돌이 속에 가둔다. 애써 만들고 덧붙이고 채워넣은 것들은 물론 작가의 작품마저 낭비되고 허비돼 버렸다.

...

왜 극장과 연극이어야 했을까?

미술관에 전시된 작품은 존재하는 그 자체로 아무것도 없이 그 공간과 시간, 여백 안에 관객들 스스로 보고, 느끼고, 상상하고, 생각케 하며, 때로 함께 공명하고 빛난다.

...

어쩌면 기획자이자 공동연출가 김현진의 말처럼 '70여 분의 시어터는 이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70여 분의 화려하고 놀라운 소더비 크리스티 경매 쇼'를 꿈꿨는 지도.
그리하여 수장도 위탁도 어려워 버거워진 작품들이 다른 주인을 만나 컬렉션이 되어 가기를 바랐을지도.

...

왜 만드는가?

왜 남기려 하는가?

...

불쑥 나. 티벳의 승려들이 그리는 색모래 그림 만다라를 떠올린다.

작은 대롱에 넣은 고운 가루 색모래들을 온 신경을 집중해서 미세하게 들숨과 날숨을 조절해 불고 흘려 만들어 내는 광경은 그 자체만으로도 숨 막히도록 황홀하고 아름답다.

꼬박 짧게는 일주일, 보름에서 길게는 한두달을 매달려 그려내는 형형색색 장엄한 도형과 색모래 만다라. 티베트 불교의 우주와 세계가 오롯이 담겨진 그림.

승려 자신들이 그 긴시간 허리도 제대로 펴지 못한채 웅크려 한땀 한땀 흘려낸 그림 앞에 물러나 앉아 합장하고 기도한다.

천천히 눈을 뜨고 일어서 금강저 막대기를 들고 그림 앞에 다가간다. 잠시 합장. 만다라가 금강저에 쓸려 흩어진다. 우주와 세계가 사라진다. 그리고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


작가 이주요 자신의 말처럼 '실패나 떨어짐의 결과'가 아니라 'Fall-ING' 떨어지는 그 자체. 순간 순간의 점들이 모여 만들어지는 듀레이션. 작업을 하고 무언가를 창작해내는 과정과 과정 속에서 그 빛나는 순간과 떨림, 설레임들을 오롯이 즐겨내기를. 그 끝은 어차피 '쿵'일지라도.

그거면 되는 거 아닐까.
어쩌면 산다는 게.


2017. 10. 23.




<Ten Years, Please 십년만 부탁합니다 >
2017.10.18 - 10.22 / 남산예술센터

큐레토리얼 랩 서울

연출, 시나리오, 무대미술 : 이주요
연출, 시나리오, 기획 : 김현진
음향 디자인 : 류한길, 유엔 치와이
안무 디자인 : 이양희
조명 디자인 : 노명준
조연출 : 정지영
조연출, 무대감독 : 이효진
무대미술제작 : 김선민, 이신후
퍼포머 : 은재필, 이이내, 전우진, 정여은, 조백한
공연영상기록 : 이미지
무대상부기기전환수 : 우대진
사진 : 조현우
인쇄물디자인 : 디자인컴퍼니


:

[관극기] 에어콘 없는 방 - 2017. 9. 14 (1회), 남산예술센터

소통/영화,연극,공연 이야기 2017. 9. 18. 15:41

그때의 실험극, 지금의 고풍극 ★★☆☆



가을인가. 금월들어 공연이 많다. 프로젝트그룹에서 산울림, 극사실주의극에서 표현주의극, 장소불특정참여극에서 극장한정극에 이르기까지 롤러코스터 오르내리듯, 열탕과 냉탕에 번갈아 몸 담그듯 다양한 스펙트럼의 공연들을 관극 하노라니 문득 한국 근현대 연극박물관이라도 돌아본 느낌이 든다.


어떤 공연은 막이 내리고도 먹먹한 맘, 손하나 까닥할 힘마저 풀린 채 여운에 젖어 차마 객석을 떠나지 못하는 공연이 있는가 하면, 또 어떤 공연은 용수철이라도 밀어올린 듯 벌떡 일어서 훌훌 털며 객석을 떠나버리게 되는 공연도 있다. 그것은 다를 뿐, 어느 것이 옳고 그르다 할 수 없다. 그럼에도 그러한 경험을 통해 내가 선호하고, 지향하는 바를 내 자신의 정서적 신체적 반응을 깨닫게 된다. 자아와 타자의 다름을 느끼고, 그로인해 내 자신을 알아간다는 의미에서 분명 의미있는 순간이자 경험이리라 믿는다.

.....

"그래. 맞다. 백수광부였지."

그랬다. 공연을 본 느낌. 전형적 '백수광부'의 연극.

1990년대 후반으로서는 분명 매우 실험적인 '사실주의극'이었을 극연출은 20여년이 훌쩍 지난 2010년대 후반의 시선에선 어느새 옛스러운 '고풍주의극'이 되어 버렸다.

"오백 년 都邑地(도읍지)를 匹馬(필마)로 돌아드니,
山川(산천)은 依舊(의구)하되 人傑(인걸)은 간 데 없다.
어즈버, 太平烟月(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18년 6개월만의 서울, 유신호텔 503호.
'피터 현'은 고국에 돌아온 소회를 길재의 시조를 빌어 읊조린다.

내로라하는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와 앙상블, 그들이 빚어내는 유연한 흐름, 고증을 따져 며칠밤을 고민했을 흔적이 역력한 브라운관 수상기며, 금성 선풍기, 무대세트와 대소도구, 장면과 장면이 만들어내는 그림들은 분명 멋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어느 한 장면 신선하게 눈길을 잡아끌지 못한 채 몇번이고 돌려봤을 식상한 클리셰로만 남았다.

아마도 연출의도였을, 종으로 좁게 뻗어 한정시킨 무대 위 무대와 앞 뒤로만 움직이는 동선, 비율이 달라 수직으로 외곡된 흐릿한 실시간 투사영상은 '피터현'이라는 인물이 과거와 현재를 오고가는 환상의 시간적 장치, 또는 그가 느꼈을 심리적 압박감과 , 답답함을 효과적으로 전달하지 못한 채 오히려 관객에게서 스스로 상상할 기회와 볼 재미를 빼앗고, 전달의 '모호함'과  '불편함'만을 남겼다. 그로인해 딱 한 번 객석 사이로 흩어지며 만들어 낸 극중극 배우들의 군중씬마저도 확 밀려드는 무대의 확장으로 체감되지 못하고, 영화나 뮤지컬 '레 미제라블'에서 여러번 봤을 법한 상투적인 표현으로만 느껴질 뿐이다.

왜 '피터 현'이어야 했을까?
왜 42년전 이야기여야 했을까?
왜 2017년 9월에 1975년 8월의 이야기를 가져왔을까?
유신호텔 503호를 통해 지금의 우리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던지려 했을까?

아쉽게도 공연은 관객 스스로가 그때와 현재가 공존하는 무대가 만들어 낸 현재와 다르지 않은 그때를 상상하게 함으로써 상황, 현실, 문제, 개인과 사회의 이야기를 공감하게 하는 방식으로서 작동하지 못하고, 시대의 담론을 담아내거나 공유하고 발화하는 데 실패한 채, 자기표현주의적 서사에 그친다.

....


"청춘을 다 보내고 늙고 비루한 말이 되어 돌아왔네"

우리 세대를 누리고, 풍미했던 한 시절의  연극. 그 뒤안길을 보는듯 안타깝고, 애틋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뿌리깊은 나무처럼 꿋꿋이 자리를 지키며 너른 그늘과 기댈 곳이 되어주기를. 가지 끝마다 새순 돋고, 꽃 피워, 새로운 열매 맺어주기를 바라며 열연해 준 배우, 스탭 분과 들께 진심으로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2017. 9. 18





남산예술센터. 2017. 9. 14. <에어콘 없는 방>


에어콘 없는 방 (2017.9.14 - 10.1 / 남산예술센터)
극단 백수광부

작 : 고영범
연출 : 이성열
출연 : 한명구, 홍원기, 민병욱, 김동완, 최원정, 김경희, 주예선, 심재완, 윤상원, 전주영, 이영재, 신주호, 박정현, 유승민

드라마터그 : 조만수
무대 : 박상봉
조명 : 김성구
음악 : 김동욱
의상 : 이수원  /  의상팀원 : 박인선, 신나라, 최은영
분장 : 이동민  /  분장팀원 : 이수연, 안소연
영상 : 윤형철
모션그래픽 : 김희정
인형제작 : 문창혁
무대감독 : 김은선  /  무대조감독 : 안수민, 노희국
조연출 : 김세홍
기획 : 코르코디움
사진 : 윤현태
인쇄물디자인 : (주)디자인컴퍼니


:

[관극기] 국부(國父) - 2017. 6. 11 (2회), 남산예술센터

소통/영화,연극,공연 이야기 2017. 6. 13. 22:24


사각의 붉은 아고라, 무대 위의 무대, 액자 속 액자..
혹은 사각의 링이거나, 덧씌워진 프레임이자 틀이면서
동시에 탄생의 상징이자 죽음의 관.

극은 사각의 틀을 끊임없이 뱅뱅 맴돌며 금기의 이름과 이야기를 꺼내는 것으로 시작되었고, 타국의 신화와 역사속 장면들을 오가며 금새라도 내밀한 이야기를 파헤치고 들춰내어 또 다른 시각에서 감춰진 진실을 내어 보일 듯 기대에 부풀게 하였으나, 접싯물에 발자국 남기듯 고인 빗물 물장구치듯 발끝에 채여 튀어오른 화두는 끝내 바짓단만 적신채 끝나버렸다.

'노란봉투'를 통해 불편한 진실과 고통스런 증언들을 끝까지 담아내던 연출의 묵직한 울림이, 이번 작품에서는 하고자 하던 이야기의 핵심에 다가가지 못한채 예의 경쾌하고 유쾌한 변주만이 남아 변죽만 울리다 끝나버린 듯 싶어, 뜨거운 여름 한낮 신작로 손에 쥐고 핥작대다 놓쳐버린 아이스바를 바라보는 아이의 마음처럼 안타깝다.

피상적 사건으로서의 사실이나 서술이 아니라, 그 사건이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의 삶에 얼마나 밀접히 닿아 있으며, 어떤 영향을 주었고 그로인해 어떤 순간들을 살아내고 있으며, 살아내야 하는 지를 '고백이 아닌 증언'으로서 담아 주었더라면 어땠을까?

어쩌면 독재자의 미화된 신화, 혹은 독재정치의 담론, 독재를 경험한 이들의 회상, 추억속의 미담을 나열하는 전개방식으로는 보는 이로 하여금 스스로 질문을 유추해내거나 현상을 비틀어 보기에는 현재를 사는 삶의 순간과 괴리를 느끼거나, 혹은 퍽퍽하고 녹녹치 않은 삶의 무게에 짓눌려 그럴만한 마음의 여유를 낼 수 없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좋아하는 배우 분들과 연출 이하 스탭 분들의 땀과 노력이 곳곳에 배어 있는 작품이라 채워지지 않은 부분이 더욱 크게 느껴지고 그래서 아쉬웠던 시간.


2017. 6. 11.



국부(國父) (2017.6.10-6.18 / 남산예술센터)
극단 돌파구

구성/연출 : 전인철
출연 : 유병훈, 조영규, 안병식, 백성철, 이지혜, 권일, 김민하, 윤미경, 하현지

기획 : 최효정
무대디자인 : 이윤수
무대제작 : 에스테이지, 이윤중, 조환준, 정우상, 권오준, 전혁
조명팀 : STAGEWORKS
조명디자인 : 최보윤
조명디자인 어시스트 : 지소연
조명팀원 : 신동선, 정주연, 최인수, 홍유진, 정하영
의상디자인 : 김지연
의상 어시스트 : 김선아
분장/소품 : 장경숙
음악 : 박민수
영상 : 정병목
영상기술 : 김성하
안무 : 금배섭
노래지도 : 김경진


:

[관극기] 가해자 탐구_부록 : 사과문작성가이드 - 2017. 4. 21 (1회), 남산예술센터

소통/영화,연극,공연 이야기 2017. 4. 25. 18:58




짙은 남색 양장표지, 음각으로 박힌 금박제목, 책등만 40mm 족히 넘을 논문집 한 권
가해자 탐구, 부록 : 사과문작성가이드

이 극은 <가해자 탐구>라는 제목에 수십여편의 부록과 방대한 주석과 색인이 달린 한편의 논문이다.
동시에 연극보다 오히려 더 연극같은 연극이다.

무대 위 두개의 세계
뒤집혀 빽빽히 빈틈없이 매어달린 의자들, 투영, 또는 이 세계
바로 놓여졌으나 군데군데 이빠진 의자들, 실제, 또는 저 세계
그리고, 무덤 위 무성히 뒤덮은 핑계처럼 의자 위 무심히 놓여진 화분들

무엇이 그림자이고, 무엇이 실제인가.
무엇이 저 세계이고, 무엇이 이 세계인가.
무엇이 예술이고, 무엇이 일상인가.

그들이 이 세계라 명명한 곳은 실은 뒤집힌 환영
그들의 몸뚱이가 단단히 발을 딛고 있는 곳은 보잘것 없는 현실

이 극은 단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놀랍도록 흡입력 있는 다섯명 배우들의 연기를 통해
도무지 끝이 보이지도 끝이 날 것 같지도 않은 지리한 저술을 시작한다.

불러두기, 대전제, 추전사, 촌평

"이 책은 생성 그 자체에 의미를 두고 있습니다."

"다 말하거나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
"다 쓰지마. 하지만 다 써야해."

"어떤 고통에 어떻게 이입하느냐 이것이 이 책의 핵심태제이다."

"제가 점해왔던 이 자리를 철회합니다."
"이 세계는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몇차의 술자리를 거쳐서야 들렀을까 문단 동인들과 왁자지껄 거나하던 스승의 집,
한나 아렌트 같고, 수전 손택 같던, 스승의 아내가 차려내던 술상에서
그토록 갈구하던 세계, 비루하게나마 자리하고 있다 안도하며 자위하는 이

예술이란 이름으로 주어진 권력과 권위, 당위성에 기댄 폭력과 위선
그 아스라한 신기루, 공고히 쌓아올린 공허한 벽은 이곳과 저곳을 가르며
기웃거리는 자들을 내치고, 무릎꿇고 두팔벌려 숭배하는 이들은 예술의 도구로 대상화하고, 사유화 한다.

부록의 부록도 끝나고, 저자와 발행처와 서지정보, ISBN이 찍힌 바코드까지도 끝나고 책의 마지막 장은 덮였으나
여전히 이 책은 마침표가 아닌 쉼표이다.






수전 손택이 <타인의 고통>에서 말한 것처럼, 이 극이 '질문을 던지는 것 이상의 것을 말해줄 수 없는 것은 당연'한지도 모른다.

연민과 동정은 '고통받고 있는 그들을 연민함으로써 내 자신이 그 고통을 가져온 원인에 연루되어 있지는 않음을 그리하여 내 자신의 무능력과 무고함을 증명하려는 뻔뻔하거나 부적절한 반응'인지도 모른다.

'우리,' 즉 그들이 겪어 왔던 일들을 전혀 겪어본 적이 없는 '우리' 모두는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는 알아듣지 못한다. 정말이지 우리는 그들이 무슨 일을 겪었는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우리는 전쟁이 얼마나 끔찍하며, 얼마나 무시무시한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그런 상황이 당연한 것처럼 되어버리는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이해할 수도, 상상할 수도 없다. - 수전손택 <타인의 고통>'

그럼에도 불구하고 귀 기울이고 소리내기를, 비록 답 없는 질문일지라도 멈추지 않기를, 내가 나에게 전하는 말.

2017. 4. 21



가해자 탐구_부록 : 사과문작성가이드 (2017.4.21-4.30 / 남산예술센터)
극단 여기는 당연히, 극장

작/연출 : 구자혜
출연 : 권정훈, 박경구, 이리, 조경란, 최순진

무대미술 : 김은진
조명디자인 : 고혁준
사운드/영상디자인 : 목소
의상디자인 : 김우성
분장디자인 : 장경숙
움직임지자인 : 권령은
조연출 : 김지영
무대감독 : 이효진
사운드/영상오퍼레이터 : 김석기
진행보조 : 김효진
자문 : 송섬별
사진 : 이강물
인쇄물디자인 : 디자인컴퍼니


:

[관극기] 2017 이반검열 - 2017. 4. 6 (1회), 남산예술센터

소통/영화,연극,공연 이야기 2017. 4. 7. 17:53




대 위 아무렇게나 놓여진 여섯개의 책걸상. 여섯명의 배우.
현재의 교실 그리고, 아이들.

"내 몸이 막 더러운 거에요. 벌레 기어가는 것처럼"
"남자를 좋아할 거면, 그건 왜 가지구 태어났냐구"
"공부도 열심히 하고 인맥도 넓혀야 다시는 이런 일 안당한다"
"니가 그런다구 뭐가 바뀔 것 같냐구"
"레즈비언이 왜 공부 잘하냐? 왜 공부 열심히 하는데?"
"상관없어. 나만 아니면 돼"
"가만히 있으라니 가만히 있었죠."
"구조된 게 아니라 살아나온거에요."
"아직까지는 슬퍼하면 안될 것 같아요. 다 끝날 때까지는"
"수련회 안가요? 아, 세월호 씨발"
"아직도 우냐?" "어떻게 웃냐?"

배우들의 입을 통해 전해지는 아이들의 말.
성소수자에서 세월호까지, 일반(一般)아닌 이반(異般)

레즈비언 색출법 가정통신문, 동성애자 신고 설문지

웃어도 울어도 좋아해도 싫어해서도 안된다. 개인의 자유의지와 생각은 권력과 권위, 종교와 도덕, 사회적 양식이란 이름으로 자행되는 권력, 권위, 폭압, 폭력, 편견, 혐오 앞에 철저하게 짓밟히고 격리, 감시, 검열당한다.

암전. 어느새 깊어진 무대와 끝없이 도열된 책걸상은 그 깊은 폭압의 뿌리를 찾아 현대사 속 역사의 뒤안길, 우리들의 자리를 더듬는다.

박정희 정권, 인혁당, 동백림, 유럽거점간첩단,민청학련,문인간첩, 간첩조작 고문 희생자와 가족들의 목소리로 배우 우범진은 생생하게 증언한다.

대한 뉘우스, 국민체조, 새마을운동...

... 탕!

그리고,


다시 전두환 신군부, 삼청교육대, 깡패척결, 조폭박멸,
팔팔(88)올림픽, 카드섹션, 마스게임, 동원된 학생들, 동원된 웃음
응원과 함성, 대형 태극기는 무대를 덮고
사람들의 자리를 덮어 무덤 위 잡초처럼 시간은 흐른다.

찬송복음 뒤 투영되는 교인들의 기도회, 피켓들.
'동성애 퇴치' '성소수자 다수인권박탈' '동성애 박멸 깨끗한 한국'

"나중에, 나중에"

이주민, 무슬림, 지체장애인, 트랜스젠더, 조현병, 성범죄피해자, 성소수자들의 말
그 아래. 태극기 덮인 무대 위로 바닷물이 흐른다. 3년전 4월 그 날처럼.


다시 현재. 교실. 여섯명의 이반 아이들.

"앞으로 누가 날 좋아해줄까?"
"그 사람과 잘 살 수 있을까?"
"나는 어떻게 늙어갈까?"
"30대에는 뭘 하고 있을까?"

암전. 박수. 여섯 배우들의 커튼 콜. 다시 암전. 텅빈 무대.





다시 혼자, 나.

남의 잣대 아닌 온전히 나를 꿈꾸는 지금.
여전히 불안하다.

남과 다르지 않아야 했고, 적어도 남만큼은 해야 했다.
눈 감고, 귀 막고, 입 닫고 '남들하는대로' 살고, '남들처럼만'을 꿈꾸며 열심히 뛰었지만 그 끝 어디에도 '나'는 없었다.

나 지금. 오늘만 산다.

그렇게 매일 하루씩. 쌓아간다.

우린 서로 다르다. 그러기에 같다.
살아가는 모든 '나'에게 응원과 지지의 연대를 보낸다.


2017. 4. 7.


2017 이반검열, 남산예술센터 - 2017. 4. 6. Quick Sketch by Heanu


2017 이반검열 (2017.4.6-4.16 / 남산예술센터)
극단 전화벨이 울린다

구성/연출 : 이연주
조연출 : 현예슬
드라마터그 : 전강희
출연 : 조아라, 우범진, 엄태준, 박수진, 양정윤, 이세영

무대디자인 : 남경식
조명디자인 : 김형연
조명오퍼레이터 : 강예슬
의상디자인 : 김우성
영상/음향 디자인 : 목소
영상/음향 오퍼레이터 : 류혜영
안무 : 이정주
사진 : 이강물
그래픽 디자인 : 황가림
무대감독 : 박진아
기획 : 나희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