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극기] 언덕을 오르는 마삼식을 누가 죽였나 - 2017. 11. 3 (1회),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소통/영화,연극,공연 이야기 2017. 11. 10. 01:23




공연을 본 뒤, 프로그램에 실린 작가의 글을 읽어내려가다 작가소개란을 보고 깜짝 놀랐다.

- 김연재: 1995년 서울생, 동덕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 4학년 재학

나는 적어도 올해로 춘추가 예순다섯 즈음 되신 선생님이 한창 글을 쓰던 1980년대 중반 서른즈음에 쓰셨던 작품이리라 생각했었다. (전적으로 나의 편견이었겠지만..)

이 작품의 모티프이자 소재가 되는 사건이 1961년 박정희 군사정권하에 이루어진 '사회명랑화사업'이라 명명하던 '대한청소년개척단 서산자활정착사업'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로부터 20여년뒤 1980년대 마치 그 사건의 데자뷰인양 재현되었던 전두환 군사정권의 '삼청교육대'를 연상케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니 실은 그러한 시대적 배경을 더듬어 작가의 나이를 셈하기 전에 이 희곡의 전체적인 전개나 흐름이 최근의 연극씬에서 행해지는 극적 형식이나 실험성은 옅은 반면, 8,90년대 고전적 사실주의 양식과 전형적인 기승전결, 혹은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의 작법을 모범적으로 지키고 있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올해로 31년이 된 극단 작은신화의 유려하고 노련한 연출주의적 표현양식 때문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개인적 호불호를 떠나 지극히 주관적인 입장에서 고백하자면, 이 작품이 지극히 모범적인 작법을 따르고 있기에, 희곡이나 시놉시스를 미리 살펴보지 않은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극의 발단부에서 이미 극중에서 벌어질 위기의 사건과 그로인한 인물들의 비극적 파국과 결말, 희망으로 읽혀질 암시로서의 클리셰가 예견되고 읽혀졌다. 한편으론 그러한 이유로 관극내내 그러한 예견이 깨어지기를 고대했기에 아쉬웠고 안타까웠다.

뻔한 이야기 전개와 결말. 극을 관람하는 관객의 입장에서 분명 재미를 반감시키고, 지루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인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종일관 이 극은 나의 눈과 귀를 잡아 끌었다. 그것은 바로 무대 위 인물을 연기하는 배우, 표현주의적이면서도 사실적이고 정성스럽게 지어진 무대세트와 조명, 음향과 효과들이었다.

인물들의 발걸음, 짐을 부리고 내리는 몸짓과 빈 삽질에서 배우들이 수도자가 수행하듯 한땀 한땀 정성스럽게 쌓아 올렸을 그간의 노고와 땀방울들이 고스란히 맺혔다. 오랜 경력과 노련한 배우 분들이기에 유려한 연기술로 장면을 가지고 놀듯 뽐내며 늘어놓을 만도 하련만은, 공연이 진행되는 무대 위에서 묵묵히 자신이 맡은 인물들을 수행하듯 벽돌 한장 한장 쌓아올리는 모습에서 정상을 향해 끝없이 돌을 밀어올리는 코린토스의 왕, 시지프스들을 보았다.

무엇이 연극을 보게 하는가?
무엇이 연극을 만들게 하는가?

답은 어디에도 없으며, 동시에 어디에나 있다. 작가와 연출을 비롯한 스태프 제작진 그리고, 누구보다 배우분들께 진심으로 존경과 찬사, 한없는 응원과 지지를 보낸다.


2017. 11. 3




아르코에술극장 소극장, 2017. 11. 3



언덕을 오르는 마삼식을 누가 죽였나 (2017.11.3 - 11.12 /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극단 작은신화

작 : 김연재
연출 : 정승헌 / 협력연출 : 반무섭
출연 : 현대철, 임형택, 박지호, 서광일, 이규동, 박상훈, 최순영, 이승헌, 지성훈, 손성현, 김성준, 박소아

무대/의상 : 김혜지
조명 : 노명준
음악 : 김동욱
조연출 : 이홍근
무대감독 : 홍지혁
오퍼레이터 : 양어진, 한주화, 지성근
그래픽 : 다홍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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