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극기] 이방인 - 2017. 9. 6 (2회), 산울림소극장

소통/영화,연극,공연 이야기 2017. 9. 20. 12:40

스무해 변함없는 / ★★☆




"그래, 차라리 제값 다 내고 보길 잘했다. 이제 『산울림』에 빚진 마음 훌훌 털 수 있겠다."

공연이 끝난 극장을 나서, 그어 붙인 담배를 한 모금 빨았다 뿜으며 흩어지는 연기마냥 중얼댄다.

똑같았다. 20여년 전 내가 그 곳을 나오던 그 때와. 산울림의 연극.

공연내내 그 특유의 연극조 평톤으로 쳐대는 대사들은 오히려 원작 텍스트의 강렬한 이미지와 선명함의 전달을 방해하고, 모호함만 남긴다. 20여년 전이었으면 아름답고, 경이로웠을 장면과 그림들은 더 이상 미장셴이 아닌 고루한 클리셰와 뻔한 제스쳐로만 남는다.평면적이고 전형적인 표현과 동선, 전형적 캐릭터로서만 존재하는 인물의 한계, 세밀한 장면과 에피소드들은 뭉개져 통으로 빚어진 흐름.무대 위 인물은 지워지고, 열연한 배우만 남는다.

리볼버의 약실처럼 회전하는 법정장면은 자뭇 신선하게 보는 이의 눈길을 잡는가 싶었으나, 예의 연극조 평톤대사, 검사와 변호사를 분간할 수 없는 전형적 캐릭터의 표현은 시각적 구성의 신선함을 끝내 덮어버리고 관객의 시선을 떠나보낸다.

아무것도 변하질 않았다. 살아있는 화석. 박제된 연극.

....

왜 우리는 연극을 볼까?

배우가 뱉어내는 대사와 절규, 일그러진 표정과 눈물 무대 위에 사방으로 뿌려지고, 뿜어내던 기운과 에너지 같은 공간에서 직접 느끼고 은혜받고 하사받기 위해서?

푹 삶아지고 쪄졌다가 한꺼풀 벗겨내고 나서는 대중목욕탕의 개운함 그런 것이었는 지도 모른다, 공연을 보고 난 뒤의 개운함.

.....

한때는 나 역시 그러했다. 그 후 겪어냈던 스무해 시간에 나의 취향과 지향은 달라졌다.

그려지지 않은 여백,
뱉어지지 않은 침묵,
하지 않은 연기에

공명하고 공감하고, 가슴 쓸어내리며 먹먹해하다가 소리없이 오열한다.

.....

스무해 전의 연극, 어쩌면 여전히 유효한 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돌고 도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와는 다르다.

.....

홍대 외딴 섬처럼 고집스럽게 지켜오는 산울림의 연극도 그리고, 나도.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또는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존재의 이유가 되어주기를.


2017. 9. 20
夢靑閑



*덧붙임

거들떠 보지도 않을 허섭한 글, 그래도 행여나 누 될까 싶어 눌러두고 담아둔 지 꼭 보름만에 쓰는 관극기. 아이쿠야. 푹 쉰내 곰삭내 천지.



산울림소극장에서 바라본 거리풍경. 2017. 9. 6



<이방인>, 산울림소극장 무대스케치 - 2017. 9. 6


이방인 (2017.9.5 - 10.1 / 산울림 소극장)

원작 : 알베르 까뮈

번역.각색.연출 : 임수현
예술감독 : 임영웅
총괄기획 : 오증자
극장장 : 임수진

출연 : 전박찬, 박상종, 송의열, 박윤석, 김효중, 박하영, 이세준

무대 : 이인애
조명 : 노명준
음악 : 김정용
영상 : 김세훈
분장 : 이윤아
의상자문 : 이신우
영문자막 : 김슬기
기획 : 김보연, 박세희
조연출 : 이세준, 이윤주
무대감독 : 이인애, 김동훈
홍보물디자인, 사진 : 김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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