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극기] 노란봉투 - 2017. 4. 28 (4회) 20:00, 연우소극장

소통/영화,연극,공연 이야기 2017. 4. 29. 03:13





무심한 듯 혹은 짝지은 듯 점점이 놓여진 여섯개의 의자
하나의 모서리, 손 맞잡듯 마주한 두 벽면
흰 듯 누렇고 연한 듯 거친 결, 구겨진 듯 펼쳐진 수백수천 창호지
펼치려던 걸까 접으려던 걸까 제멋대로 어지러이 돋은 날개 꺾여진 깃깃마다
처연하게 눈부시고 뜨겁도록 시렸을 순간 순간이 영원처럼 박혔다.

누구하나 부러라도 눈여겨 보지 않을 깊은 한켠
남겨둔 말 못다한 눈물 살아낸 이 살다간 이 켜켜이 쌓아올린 종이무덤
묘비인듯 노래인듯, 지친살이 한 잔 술 눅진한 유행가여도 좋고, 어깨걸고 내지르던 투쟁가여도 좋았을
망자에게 보내는 송가, 산 자에게 보내는 찬가, 그렇게 기타 한 대 섰다.

....


"정말은 빼도 돼. 정말을 붙이면 정말로 정말이 아닌것 같잖아."
"어떤 걸 스쳐지나가야 하고, 어떤 걸 지금 마주봐야 할지 모르겠어요."

이 극은 노동자 '영희'의 말처럼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정말로 정말 같지 않은' 이야기인 동시에 그 현실을 기록하는 PD '이고'의 말처럼 도저히 용기내어 마주하고 싶지 않은 현실이다.

"손배소. 파업으로 입은 손해를 파업노동자에게 배상청구한다라, 헌법이 보장한 파업권이지만 결국 헌법이 소용없군요."
"손배소가압류 당할 줄 알면서 왜 파업했죠?"
"파업 하지 않았어도 결국 우린 차례로 해고 됐을테니까요."

"어차피 모두가 죽는 거라면, 나라도 살아야 되진 않을까?"
"근데 그게 우리를 따로따로 죽게 하는 거에요."
"수많은 CCTV 아래서 죽은 사람처럼 살 것이냐, 아니면 사람답게 죽어서 나갈 것이냐."

비정규직 하청 해고노동자 '병로'와 정규직 원청 해고노동자 '지호', 노조파업에 참여 않고 출근을 택한 '강호', 세월호에 아들을 잃고 스스로 죽음을 택한 '민성', 아이 양육문제로 어용노조에 가입하는 '영희', 하루하루 파업일지를 기록하는 노동자 '아진'과 일련의 사건들을 영상에 담는 방송국 PD '이고' 그들의 같지만 각자의 어깨를 짓누르는 삶의 무게.

"0.01초와 0.02초, 1분과 10분, 결국 그 간격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문제아닐까. 사건이 지나가도 당사자에겐 늘 현재형이니까."

나는 알지 못한다. 아니 감히 헤아릴 수 조차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은 묻는다.

"뭐가 제일 수치스러운가요?"
"이렇게 계속 살아야된다는 거요."

....

그렇게 살아가지 않으려면, 그런 삶을 아이들에게 되물림하지 않으려면.

그것은 세월호 '민호'가 아버지 에게 전하려던 선물.
오늘도 담담히 넥타이를 매고 일터로 나서는 살아남은 자, 남겨진 자들, 저마다의 숙제.
살아낸 이, 살다간 이 끊임없이 기록하고 기억하고 소리내는 일.
여기 사림이 있었다고. 여전히 사람이 있다고.

2017.4.29.




<노란봉투>, 연우소극장 - 2017.4.28


노란봉투 (2017.4.25-5.14 / 연우소극장)

작 : 이양구
연출 : 전인철
출연 : 안병식, 최희진, 백성철, 조시현, 김민하, 양정윤, 윤미경

프로듀서 : 유인수
무대 : 박상봉
조명 : 최보윤
의상 : 최윤희
음악감독 : 박민수
영상 : 정병묵
영상기술감독 : 김성하
분장 : 정경숙
사진 : 이성주, 김솔
그래픽 : 김솔
오퍼레이팅 : 주애리, 김유림
홍보 : 스토리IP
제작 : 연우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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