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극기] Ten Years, Please 십년만 부탁합니다 - 2017. 10. 18 (1회), 남산예술센터

소통/영화,연극,공연 이야기 2017. 10. 23. 11:07




"나를 보러오라고 한거 미안해요."

맨 뒷줄 서너명의 느닷없는 박수. 사람들 따라 치지 않는다. 끝인 줄도 모르게 끝난 공연, 객석 조명 밝아지자 그제야 사람들 손 털듯 박수치며 일어서 나간다. 한 시간 런닝타임은 대여섯 시간 같은 피로감을 남겼다. 공연 전체가 작가 개인의 지극히 개인적이고도 비밀스런 악몽. 꼼짝없이 감금되었다가 풀려난 나. 어느 인터뷰 영상 위탁 보관인의 말 '와, 드디어 해방이다!' 따라하듯 내뱉는다.

"저건 정말 잉여거든. 원래 저는 기능이 없으면 다 버려요." - 위탁보관인 인터뷰 영상 중에서

어쩌면 이 극에서 작가는 존재의미에 대한 담론을 발화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분신이자 자신의 작품, 존재하는 것에 대해 효용과 가치를 따지고 평가하는 타인의 시선 앞에 작가는 '존재하는 것은 그저 존재할 뿐'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 극은 '그저 존재하는 존재'들을 가만 보아넘기지 않는다. 존재하는 무언가에 의미를 부여하고, 자기방식으로 변형하고, 다른 존재로 조형하며, 심지어 실재하는 무존재, 비어있는 여백, 공간과 순간들까지도 내버려두지 않고 무언가로 끊임없이 채워넣는다.

공처럼 뭉쳐진 소형 작품에서 무대장치급의 대형 작품까지 수십여개의 오브제에 여러대의 프로젝트 매핑, 애니메이션 영상과 비디오 클립, 텍스트와 녹음된 나래이션, 복잡다단한 조명과 효과, 스피커장치에서 쉴 새 없이 흘러나오는 수십여가지 다양한 음향들로도 모자라 일곱명의 검은 퍼포머를 등장시켜 이리저리 오브제를 밀고 끌고 당기고 돌리고 오르고 뛰어 넘는다.

시작부터 끝까지 공연내내 쉴 새없이 나열되고, 진열된 너무나 많은 공감각 정보들은 극을 통해 하려던 이야기를 모호하게 만들고, 관객에게도 스스로 상상하고, 생각하고, 이입하고, 공명할 순간을 앗아버린 채 혼란과 혼돈의 소용돌이 속에 가둔다. 애써 만들고 덧붙이고 채워넣은 것들은 물론 작가의 작품마저 낭비되고 허비돼 버렸다.

...

왜 극장과 연극이어야 했을까?

미술관에 전시된 작품은 존재하는 그 자체로 아무것도 없이 그 공간과 시간, 여백 안에 관객들 스스로 보고, 느끼고, 상상하고, 생각케 하며, 때로 함께 공명하고 빛난다.

...

어쩌면 기획자이자 공동연출가 김현진의 말처럼 '70여 분의 시어터는 이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70여 분의 화려하고 놀라운 소더비 크리스티 경매 쇼'를 꿈꿨는 지도.
그리하여 수장도 위탁도 어려워 버거워진 작품들이 다른 주인을 만나 컬렉션이 되어 가기를 바랐을지도.

...

왜 만드는가?

왜 남기려 하는가?

...

불쑥 나. 티벳의 승려들이 그리는 색모래 그림 만다라를 떠올린다.

작은 대롱에 넣은 고운 가루 색모래들을 온 신경을 집중해서 미세하게 들숨과 날숨을 조절해 불고 흘려 만들어 내는 광경은 그 자체만으로도 숨 막히도록 황홀하고 아름답다.

꼬박 짧게는 일주일, 보름에서 길게는 한두달을 매달려 그려내는 형형색색 장엄한 도형과 색모래 만다라. 티베트 불교의 우주와 세계가 오롯이 담겨진 그림.

승려 자신들이 그 긴시간 허리도 제대로 펴지 못한채 웅크려 한땀 한땀 흘려낸 그림 앞에 물러나 앉아 합장하고 기도한다.

천천히 눈을 뜨고 일어서 금강저 막대기를 들고 그림 앞에 다가간다. 잠시 합장. 만다라가 금강저에 쓸려 흩어진다. 우주와 세계가 사라진다. 그리고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


작가 이주요 자신의 말처럼 '실패나 떨어짐의 결과'가 아니라 'Fall-ING' 떨어지는 그 자체. 순간 순간의 점들이 모여 만들어지는 듀레이션. 작업을 하고 무언가를 창작해내는 과정과 과정 속에서 그 빛나는 순간과 떨림, 설레임들을 오롯이 즐겨내기를. 그 끝은 어차피 '쿵'일지라도.

그거면 되는 거 아닐까.
어쩌면 산다는 게.


2017. 10. 23.




<Ten Years, Please 십년만 부탁합니다 >
2017.10.18 - 10.22 / 남산예술센터

큐레토리얼 랩 서울

연출, 시나리오, 무대미술 : 이주요
연출, 시나리오, 기획 : 김현진
음향 디자인 : 류한길, 유엔 치와이
안무 디자인 : 이양희
조명 디자인 : 노명준
조연출 : 정지영
조연출, 무대감독 : 이효진
무대미술제작 : 김선민, 이신후
퍼포머 : 은재필, 이이내, 전우진, 정여은, 조백한
공연영상기록 : 이미지
무대상부기기전환수 : 우대진
사진 : 조현우
인쇄물디자인 : 디자인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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