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극기] 2017 이반검열 - 2017. 4. 6 (1회), 남산예술센터

소통/영화,연극,공연 이야기 2017. 4. 7. 17:53




대 위 아무렇게나 놓여진 여섯개의 책걸상. 여섯명의 배우.
현재의 교실 그리고, 아이들.

"내 몸이 막 더러운 거에요. 벌레 기어가는 것처럼"
"남자를 좋아할 거면, 그건 왜 가지구 태어났냐구"
"공부도 열심히 하고 인맥도 넓혀야 다시는 이런 일 안당한다"
"니가 그런다구 뭐가 바뀔 것 같냐구"
"레즈비언이 왜 공부 잘하냐? 왜 공부 열심히 하는데?"
"상관없어. 나만 아니면 돼"
"가만히 있으라니 가만히 있었죠."
"구조된 게 아니라 살아나온거에요."
"아직까지는 슬퍼하면 안될 것 같아요. 다 끝날 때까지는"
"수련회 안가요? 아, 세월호 씨발"
"아직도 우냐?" "어떻게 웃냐?"

배우들의 입을 통해 전해지는 아이들의 말.
성소수자에서 세월호까지, 일반(一般)아닌 이반(異般)

레즈비언 색출법 가정통신문, 동성애자 신고 설문지

웃어도 울어도 좋아해도 싫어해서도 안된다. 개인의 자유의지와 생각은 권력과 권위, 종교와 도덕, 사회적 양식이란 이름으로 자행되는 권력, 권위, 폭압, 폭력, 편견, 혐오 앞에 철저하게 짓밟히고 격리, 감시, 검열당한다.

암전. 어느새 깊어진 무대와 끝없이 도열된 책걸상은 그 깊은 폭압의 뿌리를 찾아 현대사 속 역사의 뒤안길, 우리들의 자리를 더듬는다.

박정희 정권, 인혁당, 동백림, 유럽거점간첩단,민청학련,문인간첩, 간첩조작 고문 희생자와 가족들의 목소리로 배우 우범진은 생생하게 증언한다.

대한 뉘우스, 국민체조, 새마을운동...

... 탕!

그리고,


다시 전두환 신군부, 삼청교육대, 깡패척결, 조폭박멸,
팔팔(88)올림픽, 카드섹션, 마스게임, 동원된 학생들, 동원된 웃음
응원과 함성, 대형 태극기는 무대를 덮고
사람들의 자리를 덮어 무덤 위 잡초처럼 시간은 흐른다.

찬송복음 뒤 투영되는 교인들의 기도회, 피켓들.
'동성애 퇴치' '성소수자 다수인권박탈' '동성애 박멸 깨끗한 한국'

"나중에, 나중에"

이주민, 무슬림, 지체장애인, 트랜스젠더, 조현병, 성범죄피해자, 성소수자들의 말
그 아래. 태극기 덮인 무대 위로 바닷물이 흐른다. 3년전 4월 그 날처럼.


다시 현재. 교실. 여섯명의 이반 아이들.

"앞으로 누가 날 좋아해줄까?"
"그 사람과 잘 살 수 있을까?"
"나는 어떻게 늙어갈까?"
"30대에는 뭘 하고 있을까?"

암전. 박수. 여섯 배우들의 커튼 콜. 다시 암전. 텅빈 무대.





다시 혼자, 나.

남의 잣대 아닌 온전히 나를 꿈꾸는 지금.
여전히 불안하다.

남과 다르지 않아야 했고, 적어도 남만큼은 해야 했다.
눈 감고, 귀 막고, 입 닫고 '남들하는대로' 살고, '남들처럼만'을 꿈꾸며 열심히 뛰었지만 그 끝 어디에도 '나'는 없었다.

나 지금. 오늘만 산다.

그렇게 매일 하루씩. 쌓아간다.

우린 서로 다르다. 그러기에 같다.
살아가는 모든 '나'에게 응원과 지지의 연대를 보낸다.


2017. 4. 7.


2017 이반검열, 남산예술센터 - 2017. 4. 6. Quick Sketch by Heanu


2017 이반검열 (2017.4.6-4.16 / 남산예술센터)
극단 전화벨이 울린다

구성/연출 : 이연주
조연출 : 현예슬
드라마터그 : 전강희
출연 : 조아라, 우범진, 엄태준, 박수진, 양정윤, 이세영

무대디자인 : 남경식
조명디자인 : 김형연
조명오퍼레이터 : 강예슬
의상디자인 : 김우성
영상/음향 디자인 : 목소
영상/음향 오퍼레이터 : 류혜영
안무 : 이정주
사진 : 이강물
그래픽 디자인 : 황가림
무대감독 : 박진아
기획 : 나희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