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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04.02 [관극단상] 전쟁터의 소풍 - 2018. 3. 29, 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
  2. 2017.09.27 [관극기] 쟨더트러블 - 2017. 9. 27 (5회), 혜화동1번지 소극장

[관극단상] 전쟁터의 소풍 - 2018. 3. 29, 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

소통/영화,연극,공연 이야기 2018. 4. 2. 02:45

<전쟁터의 소풍>
공동창작집단 아르케
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
2018. 3. 29


페르난도 아라발의 원작에 없는 '칼'의 존재와 역할, 그로테스크한 움직임과 화술, 텍스트, 아코디언 실연으로 만들어내는 분위기, 존재하면서도 존재하지 않는 무대위의 약속과 설정은 아르케의 <전쟁터의 소풍> 공연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자 인상적인 역할임을 부인할 수 없다.  다만 그로인해 원작의 네 인물(자뽀, 재뽀, 떼빵, 떼빵 부인)만으로 만들어지는 각 인물간의 관계나 명징한 서사구조의 연결고리가 옅어져서 상대적으로 칼에 비해 주요 인물들이 덜 보여질 수 밖에 없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위생병 1, 2 역할을 맡은 김관장, 정다정 배우는 자칫하면 공연 전체의 흐름을 환기시키는 역할 그 자체에 빠져 과잉될 수 있는 연기나 부자연스러운 호흡없이, 주위 인물과 공연 흐름에 적절히 반응하면서도 '낯설면서도 흥미로운' 소리와 움직임을 만들어 냈으며, 무엇보다 무대 위에서 철저히 인물로서 존재하고 발화함으로써 등장 전후의 세계를 명징하게 바꿔 놓았다. 또한 작품에 참여한 연출부와 배우들은 물론 스탭진을 비롯한 제작진 모두가 오랜 기간을 함께 고민하고 만들어 낸 시간의 무게와 흔적이 여실히 보여져 감동적인 무대였다. 특히 '구스타프 클림트'의 그림을 연상케 하는 포스터 그래픽은 동일 기간 대학로 빌보드에 내걸린 여타의 포스터들 중에 단연 눈길을 사로잡는 작품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공연에서 가장 아쉬웠던 점은 쓰러진 네 인물 사이를 지나는 칼을 보며 작품의 내용이나 의도와는 상관없이 배우들이 밟힐까 걱정하게 만들었던 지극히 좁은 무대. '예술공간 오르다' 정도만 됐더라도 좀 더 풍성한 공간감을 만들어 내지 않았을까? 넓은 극장에서 더욱 더 풍성하고 멋져질 <전쟁터의 소풍> 시즌 2를 만나는 날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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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극기] 쟨더트러블 - 2017. 9. 27 (5회), 혜화동1번지 소극장

소통/영화,연극,공연 이야기 2017. 9. 27. 13:33

어정쩡한 스탠스 어설픈 계몽극, 그럼에도 불구하고 / ★★★☆☆



바로 코 앞으로 차들이 지나는 앉을 곳조차 없는 건물밖 도로에 흩어져 꼼짝없이 벌 받듯 서서 삼십여분을 기다리다 정시가 몇분 넘어서야 관객들은 열려진 문을 바라보고 눈치를 살피며 주춤 거리다 들어선다.

"남성은 이 쪽, 나머지는 이 쪽"

무대로 들어서는 계단 가운데 한 이가 막고 서서 제지하고 지시하는 이의 손짓에 따라 관객들은 온순한 암수 양이 되어 별다른 저항도 한마디 불평도 없이 좌우로 나뉘어 무대로 들어선다.

'클럽 트러블'. 무대 안쪽 바 테이블 뒤로 세 명의 바텐더. 바 앞으로 늘어선 다리 긴 높은 의자, 무대 바깥쪽 낮고 평평한 단을 비뚤게 쌓아올린 계단 같은 곳에 짙은 '록키호러픽쳐쇼'나 '헤드윅'보다 과하게 짙고 괴이한 화장을 한 배우들이 앉거나 서서 웃고 떠들고 시시덕거리고 장난친다.

어디에도 객석은 없다. 한쪽 구석에 쌓인 등산용 접이식 깔개를 가져다 등받이도 없이 무대 위 비뚤어진 계단 여기저기 내려앉아 비오는 날 고가 밑 비둘기처럼 숨을 고른다.

편한 자세를 찾아 몸을 굽히거나 턱을 괘고, 다리를 펴거나 비틀어 꼬아보지만 러닝타임 한시간 이삼십여 분. 등받이 없는 딱딱한 바닥에 앉아 남은 건 뻐근한 허리와 육체적 피로감.

그리고, 정신적 피로감

....

피로감. 의도치 않은 것에서 불편과 부당함을 느꼈다.

왜 모든 인물들이 튀는 염색 머리에 독하게 화장하고 잘 차려 입은 젊은 남자와 여자들이어야만 하는가?
왜 그들을 마치 동물원 우리안 원숭이처럼 뛰고 기고 어슬렁거리고 기괴하게 웃으며 중얼거리게 했을까?
하고자 하는 얘기를 풀어내는 데 동성애 클럽이나 게이바의 설정이 정말로 꼭 필요한 장치였을까?

소수자를 대상화하고, 과장, 희화하거나 흉내내는 방식으로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가, 아니 그래도 되는가?

이 극은 관객참여극인가, 아니면 계몽극인가?
그들은 묻는다. 그러나 관객의 말은 단단한 유리벽에 부딪혀 미끄러지는 민들레 포자처럼 아무런 힘을 갖지 못한다.

이 극을 통해 정말로 관객과 대화하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그저 설교하고 계몽하려던 걸까?
상상하고 규정한 우매한 관중들에게 자신들의 관용, 관대함과 성적감수성의 우월함을 설파하려던 걸까?

진짜의 목소리에서 원하는 말만을 가져다 희미한 영상안에 박제화 해놓고 필요한 부분만을 필요한 때에 다시 재생한다. 질문을 뱉은 이들 답하는 그의 말을 듣지 않는다. 쉴 새 없이 질문하고 관객에게 답변을 요구하지만, 정작 관객의 목소리와 답변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미리 준비해 둔 이야기를 설파할 뿐.

그들은 묻는다. 허나 애초에 내 생각 따윈 필요 없다, 필요한 건 행위에 대한 반응 뿐
스탑 앤 플레이. 세모와 네모를 번갈아 누르는 마이마이 워크맨 카세트플레이어.

가짜들의 잔치처럼 느껴지는 것에서 오는 불편과 부당함

......


적어도 삼십여분전부터 들어갔으면 어땠을까? 진짜 클럽처럼.

관객 모두에게도 공평한 클럽 의자와 작은 코너 테이블, 자연스레 주문하는 음료와 차, 함께 오거나 만난 이들과 안부를 물으며 공연에 대한 기대와 일상을 얘기하며 웅성거리는 공간. 인물들이 그러한 사람들 중의 하나로서 슬그머니 젖어들 듯 들어와지면 그렇게 공연이 시작됐더라면 어땠을까?

겉으로는 자뭇 평범해 보이는 우리네 이웃들, 대머리 기혼중년이자 소수적 성정체성, 계약직 회사원이자 소수적 성지향자, 취준생, 배우지망생이자 스트리퍼 성산업 노동자.. 정형화되거나 고정화되지 않은 인물에게서 나와지는 각기 다른 성지향, 정체성, 감수성의 다양한 스펙트럼이 만나 빚어지는 질문과 소소한 갈등과 깊은 절망과 무기력함 속에 찰나를 스치는 희망. 다시 반복되는 일상. 그것들이 보여졌더라면 어땠을까?

....

꺼내고 싶던 얘기와 마음 감히 헤아려보니 고맙기도 하고, 알 것도 같기에
여전히 시큰대는 허리마냥 아프고, 아쉽고, 안타깝다.


2017. 9. 27
夢靑閑




2017년 9월 26일 오후 7시 35분, 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 풍경



쟨더트러블 (2017.9.26 - 10.1 / 혜화동1번지 소극장)
극단 창세

공동창작 / 구성, 연출 : 백석현
출연 : 안훈, 하연숙, 김유민, 박성순, 이현경

조연출, 리허설기록 : 최승은
기획 : 김혜진  /  기획보 : 김지은
무대 : 김주영
조명 : 손정은  / 조명오퍼 : 김윤하
음향 : 목소  / 음향오퍼 : 김지숙
움직임지도 : 홍예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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