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돌이다. 더이상 떨지 않는다. 돌은 물속에 천천히 가라앉는다. 물에서 나는 영원토록 숨을 죽인다.
- <브레인 컨트롤>, 진혼프로그램 - '나'의 詩 중에서
....
존버! 오롯이 살아있다 느끼지 못하고, 어떻게든 살아남으려 바둥대며 겨우 숨쉬고 있는 나. 쉴 새 없는 갈림길과 선택지 사이를 오가며 내리는 나의 선택선택은 과연 나의 것일까? 타인의 시선, 사회, 조직, 구조가 강요한 딱딱하고 비좁은 기준과 상황에 떠밀려 어떻게든 나를 구겨넣다 못해 갈아넣는 삶. 오늘을 내일을 위해 유보하는 삶.
다리나 마을, 저택과 거리 풍경, 과거와 현재 등 다양한 공간과 시간적의미로 읽혀지는 가설가교와 그 위로 뒤덮은 수만장의 하얀 습자지, 눈인듯 매화인듯 흐드러지게 핀 나무들이 아름다운, 가성비 높은 무대 디자인. 그리고, 시작부터 분위기를 이끌어가며 공간과 시간을 전환하는 음악이 돋보이는 작품. 그러나, 많은 배우들의 열연에도 불구하고,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연습시간이 채워지지 않은 호흡과 각기 다른 연기톤, 여백 아닌 관계의 공백으로 보여져 아쉬웠던 작품.
모든 배우들, 연출과 스탭, 프로덕션, 행사관계자들에게, 특히 뒤에서 보이지 않게 첫리딩에서부터 스트라이크 철수 순간까지 쓰고 동동거리며 마음 조렸을 조연출에게 지지와 응원을 보낸다.
페르난도 아라발의 원작에 없는 '칼'의 존재와 역할, 그로테스크한 움직임과 화술, 텍스트, 아코디언 실연으로 만들어내는 분위기, 존재하면서도 존재하지 않는 무대위의 약속과 설정은 아르케의 <전쟁터의 소풍> 공연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자 인상적인 역할임을 부인할 수 없다. 다만 그로인해 원작의 네 인물(자뽀, 재뽀, 떼빵, 떼빵 부인)만으로 만들어지는 각 인물간의 관계나 명징한 서사구조의 연결고리가 옅어져서 상대적으로 칼에 비해 주요 인물들이 덜 보여질 수 밖에 없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위생병 1, 2 역할을 맡은 김관장, 정다정 배우는 자칫하면 공연 전체의 흐름을 환기시키는 역할 그 자체에 빠져 과잉될 수 있는 연기나 부자연스러운 호흡없이, 주위 인물과 공연 흐름에 적절히 반응하면서도 '낯설면서도 흥미로운' 소리와 움직임을 만들어 냈으며, 무엇보다 무대 위에서 철저히 인물로서 존재하고 발화함으로써 등장 전후의 세계를 명징하게 바꿔 놓았다. 또한 작품에 참여한 연출부와 배우들은 물론 스탭진을 비롯한 제작진 모두가 오랜 기간을 함께 고민하고 만들어 낸 시간의 무게와 흔적이 여실히 보여져 감동적인 무대였다. 특히 '구스타프 클림트'의 그림을 연상케 하는 포스터 그래픽은 동일 기간 대학로 빌보드에 내걸린 여타의 포스터들 중에 단연 눈길을 사로잡는 작품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공연에서 가장 아쉬웠던 점은 쓰러진 네 인물 사이를 지나는 칼을 보며 작품의 내용이나 의도와는 상관없이 배우들이 밟힐까 걱정하게 만들었던 지극히 좁은 무대. '예술공간 오르다' 정도만 됐더라도 좀 더 풍성한 공간감을 만들어 내지 않았을까? 넓은 극장에서 더욱 더 풍성하고 멋져질 <전쟁터의 소풍> 시즌 2를 만나는 날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쏜턴 와일드 <우리읍내>, 닐 싸이먼 <굿 닥터>를 연상시키는 익숙하고 친근한 방식의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었으나, 다른 한편으로 이야기의 소재나 내용, 표현양식 또한 새로울 것 없는 전형적 형태를 답습하고 있어서 다음 장면과 이야기가 예측된 대로 전개되어진 점이 아쉬웠다. 특히 작가가 밝힌 '여권신장' '남녀평등'이란 주제에 대한 대한 깊은 성찰이나 문제의식, 다각적 견해와 고민없이 해당 직군의 여성 뿐 아니라 주변 남성 인물들까지도 전형적인 인물로서 희화하거나 대상화하여 그려낸다거나, 우스꽝스러운 슬랩스틱 코메디 연기일지 몰라도 실제로는 남녀 모두 대화나 소통이 아닌 폭력적 수단을 통해 작위적인 결말을 도출하는 이야기 구조라는 점에서 아쉬웠다.
그러나 무대 위 배우들 서로가 주고 받는 호흡에서 '정말 모두가 무대를 즐기고 있구나' 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특히 관객들 중에는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의 어린 친구들도 제법 있었는 데 공연 중간 중간 웃고 박수치며 함께 즐기는 모습을 보며 그것만으로도 의미있고 뭉클한 공연이지 않았나 생각하게 된다.
배우들의 멋진 연기와 움직임, 흥미로운 이야기 구조(옴니버스식 비서사극)와 그림들을 가지고 있었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이야기 구조 자체, 일정한 템포와 동일한 형식으로 반복되는 구조때문에 나중엔 이야기가 지루하게 느껴져서 몰입과 이해를 방해했다. 알 수 없도록 조각들을 빼거나 섞어서 늘어놓고, "어디 한번 맞춰봐" 하는 의도가 폭력적인 강요처럼 느껴졌다. 연출가 '까띠 라뺑'에 의해 구현된 무대는 작가인 '상드린느 로쉬'의 본래 작품이 가진 즉흥적 서사 요소(자유로움, 개방성, 놀이로서의 재미)는 사라지고, 형식과 그림만 남아 오히려 경직되고 난해한 작품으로 남은 공연이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다른 무엇보다 관람을 방해하는 최악의 장애물은 동양예술극장 2관 2층 객석 그 자체. 주로 표정 대신 배우들의 윗통수를 봐야만 했던 구조는 차치하고서라도 그마저도 철저히 시야를 가리는 난간 펜스 객석구조에 경악.
1998년 당시 박근형 각색, 연출의 극단 초연작. 스무해 넘게 사랑 받아왔으니 이제는 편히 쉬도록 안녕을 고해야 할 작품. '80, '90년대 극장에서 막 걸어나온 듯한 고풍스런 연출과 그림이야 오히려 향수를 자아내는 기교라쳐도, 참을 수 없는 구시대적 남성서사와 성찰과 반성없이 전승되는 전근대적 관점의 각색과 연출 그리고, 정서에 뒤떨어진 음악.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원이란 이름으로 각자의 자리에서 전천후 스탭이자 배우로서 땀과 열연으로 작업과 공연을 만들고 있는 이들에게 존경과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